이번 발견은 그동안 이론으로만 논의되던 ‘노화 전파(senescence propagation)’의 메커니즘을
분자와 생리적 수준에서 명확히 제시하며,
노화가 단순히 일부 세포 내부의 문제가 아니라
몸 전체에서 일어나는 전신적 현상임을 보여준 획기적인 연구라 할 수 있습니다.
어떤 형태의 HMGB1인가? “Reduced HMGB1”의 역할
HMGB1(High Mobility Group Box 1)은 원래 세포핵 안에서 일하는 단백질입니다.
염색질(유전자 정보를 담고 있는 DNA와 단백질의 복합체)을 정리하고,
유전자 발현을 조절하며, DNA 구조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이 단백질이 세포 밖으로 나오면 전혀 다른 모습을 보입니다.
염증을 유발하거나 면역 반응을 조절하는 등, 일종의 ‘신호 전달자(단백질)’로 변신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HMGB1의 상태에 따라 기능이 완전히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환원 상태(reduced HMGB1, ReHMGB1): 이번 연구에서 밝혀진 바로는, 이 형태가 노화를 다른 세포로 퍼뜨리는 핵심적인 신호 역할을 합니다.
산화 상태(oxidized HMGB1, OxHMGB1): 반대로 이 형태는 노화 신호를 퍼뜨리는 작용이 거의 없거나 매우 약하게 나타납니다.
쉽게 말해, HMGB1은 회사에서는 카리스마 넘치는 상사, 집에서는 아이에게 다정한 아빠처럼, 상황에 따라 전혀 다른 역할을 하는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HMGB1도 세포 안에 있을 때와 밖에 있을 때, 그리고 환원 상태일 때와 산화 상태일 때 전혀 다른 역할을 맡는 것이죠.
HMGB1 단백질이 환원형일 때는 노화 신호를 퍼뜨리고, 산화형일 때는 거의 작용하지 않는 두 역할을 보여주는그림
즉, HMGB1이 어떤 화학적 상태에 있느냐가 노화 전파에 결정적인 차이를 만든다는 것이죠.
실험 결과: 세포·동물 모델에서 무엇을 관찰했나
연구진은 먼저 시험관(in vitro)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건강한 인간 세포들 — 예를 들어 피부 섬유아세포, 근육 세포, 신장 상피 세포 등에
ReHMGB1과 OxHMGB1을 각각 처리해 본 것이죠.
환원형인 ReHMGB1을 넣은 세포에서는 세포가 더 이상 분열하지 않는
세포 주기 정지(cell cycle arrest) 현상이 나타났고,
p16, p21 같은 노화 관련 단백질이 증가했습니다.
또 SA-β-gal 양성이 늘고, 염증을 유발하는 분비물(SASP)이 활발하게 나오면서,
노화의 전형적인 특징들이 뚜렷하게 보였습니다.
반면, 산화형인 OxHMGB1을 넣었을 때는 이런 변화가 거의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세포 실험부터 동물, 그리고 사람 혈액 분석까지 일관되게 확인된 ReHMGB1의 노화 전파 역할을 도식화한 그림
다음으로 동물 모델을 살펴봤습니다.
연구진이 살아 있는 생쥐의 혈관에 ReHMGB1을 주입하자,
여러 조직에서 노화 표지자들이 상승했고 근육 기능이 떨어지는 등 실질적인 노화 증상이 나타났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중년 생쥐에서 근육 손상을 유도한 뒤 HMGB1에 대한 항체 치료를 해보니,
노화 관련 표지자가 줄어들고 조직 재생 능력이 되살아나는 효과가 확인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연구진은 사람의 데이터를 검증했습니다.
노인의 혈액 샘플을 분석한 결과, 젊은 층보다 혈중 ReHMGB1 농도가 높게 나타나는 경향이 확인된 것이죠.
이는 시험관 내의 세포실험이나 동물 모델에만 국한된 현상이 아니라, 실제 인간의 노화와도 연결된다 것을 보여줍니다.
왜 중요한가: 노화 이해와 치료의 전환점
이 연구가 지금 왜 큰 주목을 받는지 이유는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노화의 전파 메커니즘 규명 예전에는 노화된 세포가 주변 세포에만 영향을 준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연구는 노화 신호가 혈류를 타고 멀리 떨어진 조직까지 전달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는 노화를 ‘부분적인 현상’이 아닌 몸 전체의 현상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중요한 전환점입니다.
치료 가능성의 제시 ReHMGB1을 억제하거나 차단하는 항체 치료를 통해 노화 마커가 줄어들고, 특히 근육에서 재생 능력이 회복되는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이는 단순한 “지연”이 아니라 기능 회복 가능성도 시사합니다.
노화 마커 및 진단 도구로서의 잠재력 혈액 속 ReHMGB1 수준이 나이와 뚜렷한 상관관계를 보였다는 점도 주목할 만합니다. 이는 향후 노화 정도를 평가하거나 조기 진단에 활용할 수 있는 바이오마커로 있습니다.
활용 가능성: 치료제, 노화 마커, 재생의학에서의 응용
앞으로 이 발견이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활용될 수 있습니다:
항-ReHMGB1 항체 또는 억제제 개발: 노화가 지나친 조직에서 체외 또는 체내적으로 ReHMGB1 작용을 억제하는 약물이나 항체 치료법 개발이 가능할 것입니다.
노화 예방 및 건강 수명 연장: 중년 이후 나타나는 근육 약화나 상처 치유 지연 같은 문제를 예방하거나 회복하는 전략으로 쓰일 수 있습니다.
노화 진단용 바이오마커: 혈중 ReHMGB1 농도를 측정해 개인의 노화 진행 속도나 관련 질환 위험도를 평가하는 검사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재생의학 및 조직공학: 노화된 조직이나 세포 환경에서 재생을 방해하는 노화 신호를 차단함으로써 줄기세포 치료, 조직 이식, 손상 회복 등의 효율을 높일 수 있습니다.
과제와 미래 전망
물론 이 연구가 매우 유망하지만, 실제로 임상 적용하기까지는 몇 가지 큰 과제들 또한 존재합니다:
안전성 및 부작용: ReHMGB1를 장기간 차단했을 때, 면역 반응이나 염증 조절, 조직의 균형(homeostasis)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아직 충분히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정확한 조절과 투여 방법: 언제, 어느 조직에서, 어느 정도 수준으로 ReHMGB1을 억제해야 가장 효과적인지, 또 투여 빈도나 방식(항체 치료 vs 소분자 억제제 등)에 대한 연구가 필요합니다.
인간 대상 연구 부족: 현재는 마우스 실험 및 세포 수준 실험이 중심이며,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 데이터는 아직 없습니다.
노화의 복합성: 노화는 단일 요인만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유전자 손상, 단백질 접힘 문제(proteostasis), 미토콘드리아 기능 저하, 줄기세포 고갈 등 다양한 요인이 얽혀 있습니다. 따라서 ReHMGB1 차단이 모든 노화 현상을 해결해 줄 수 있을지는 아직 불확실합니다.
그럼에도 이 연구는 노화 연구 및 치료 전략에서 하나의 중요한 전환점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앞으로 다양한 조직, 다양한 종(species), 이 개념이 실제 의료 현장에서 적용되어 단순히 수명(lifespan)을 늘리는 데 그치지 않고, 건강 수명(healthspan)까지 연장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