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에서 우리는 인공배아 연구가 보여주는 놀라운 가능성과 동시에 제기되는 윤리적 논쟁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과학 기술이 인간의 삶을 바꾸는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 만큼, 그 이면에는 언제나 깊은 성찰과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점도 함께 이야기했습니다.
오늘 소개할 사건은 그 성찰이 부족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아닐 듯합니다. 2018년, 중국의 허젠쿠이(He Jiankui) 박사가 세계 최초로 ‘유전자 편집 아기’를 탄생시켰다고 발표했을 때, 전 세계 과학계와 사회는 충격에 휩싸였습니다. 이 사건은 단순히 한 과학자의 일탈이 아니라, “우리는 유전자 편집 기술을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습니다.
'유전자 편집 아기' 사건의 충격적인 전말
2018년 11월, 홍콩에서 열린 국제 유전체 편집 학회 현장은 과학계의 축제와도 같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 무대 위에서 터져 나온 한 과학자의 발표는 모두를 얼어붙게 만들었습니다. 바로 중국 남방과학기술대학교의 허젠쿠이(He Jiankui) 박사가, 세계 최초로 유전자 편집 아기를 탄생시켰다고 발표하였던 거죠.
그는 쌍둥이 아기의 아버지가 에이즈(HIV) 환자라는 이유로, 배아 단계에서 CCR5 유전자를 비활성화해 HIV 감염에 저항성을 갖도록 만들었다고 주장했습니다. 문제는 이 개입이 단순히 두 아기에게만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수정된 유전자는 이 아이들이 앞으로 낳게 될 자녀와 후손에게까지 그대로 전달될 수 있었습니다. 즉, 허 박사가 감행한 것은 한 세대에 국한되는 체세포 편집이 아니라, 세대를 이어가며 유전되는 생식세포 계열 편집(germline editing)이었던 것입니다. 체세포 편집은 현재 살아 있는 한 사람의 세포만을 바꾸는 반면, 생식세포 계열 편집은 태어나지 않은 아기와 그 후손 들까지 모두 바꿔버린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한 사람만 바꾸는 체세포 편집 vs 후손까지 영향을 미치는 생식세포 계열 편집을 비교한 도식 이미지
이는 전 세계 과학자들이 수십 년간 생명 윤리의 최후 보루로 여겨왔던 경계선을 허젠쿠이 박사가 아무런 사전 논의나 승인 없이 넘어선 것이었습니다. 많은 과학자들은 이를 “인간 존엄성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자 “과학자의 무책임한 도전”이라고 규정하며 강력히 비판했습니다.
과학계가 분노한 이유: 윤리적 경계의 붕괴
허젠쿠이 박사의 행위는 왜 그토록 큰 분노를 샀을까요? 단순히 기술적 미숙함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그의 연구는 과학의 기본 원칙과 의료 윤리를 송두리째 무시한 행위였기 때문입니다.
과학의 빛과 그림자 사이, 유전자 편집 아기가 던진 경고의 메세지
불필요한 위험 그가 선택한 방법은 애초에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이미 HIV 감염을 막기 위한 안전한 방법, 예를 들어 ‘정자 세척(Sperm Washing)’ 같은 기술이 존재했기 때문입니다. 굳이 유전자를 편집할 이유가 없는 상황에서, 그는 아이들의 DNA에 예측 불가능한 변이를 남길 수 있는 위험한 실험을 강행했습니다.
검증되지 않은 안전성 CRISPR-Cas9 기술은 매우 강력하지만, 당시에는 여전히 ‘부작용’이 문제였습니다. 의도치 않게 잘못된 위치를 건드리는 오프-타겟(off-target) 변이가 발생할 수 있었고, 그것이 아이들의 건강에 장기적으로 어떤 영향을 줄지 전혀 알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마치 브레이크가 검증되지 않은 자동차를 타고 고속도로에 오르는 것과 같은 위험이었죠.
윤리적 동의의 부재 연구에 참여한 부모들조차 충분한 설명을 듣지 못했고, 강압적인 분위기 속에서 동의서를 작성했다는 의혹이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본인들의 삶이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을 아이들의 의사는 전혀 반영되지 않았습니다. 이는 의료 윤리의 가장 기본 원칙을 저버린 것입니다.
‘디자이너 베이비’의 시작 더 큰 문제는 상징성이었습니다. 유전 질환 치료라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사실상 인간의 지능·외모·체질 등 원하는 특성을 마음대로 조작할 수 있는 ‘디자이너 베이비(designer baby)’ 시대의 문을 열었다는 비판이 제기된 것이죠. 이는 사회적 불평등과 계층 간 갈등을 심화시킬 수 있는 위험한 신호였습니다.
이 사건은 전 세계의 과학자들이 생명윤리 규제를 더 강화해야 한다는 데 목소리를 모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결국 허젠쿠이 박사는 2019년 12월, 중국 법원에서 불법 의료행위 혐의로 징역 3년과 벌금형 300만 위안(약 5억 원)을 선고받았습니다.
'슈퍼 아기', 현재 아이들의 상태는?
아마도 많은 분들이 궁금해하는 질문일 아니까 합니다.
'슈퍼 아기'라 불렸던 쌍둥이 자매의 현재 상태는 어떨까요?
쌍둥이 '루루'와 '나나'는 중국 정부의 감시와 보호 아래 외부에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허젠쿠이 박사가 감옥에 수감되어 있는 동안, 두 아이는 중국 정부의 보호와 감시 속에 외부와 단절된 채 성장했습니다.
2023년 12월, 허 박사가 징역 3년을 마치고 출소한 뒤 언론과 인터뷰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쌍둥이는 7살이 되었고 학교에 다니며 건강하게 지내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주장은 어디까지나 허 박사의 말일뿐, 이를 확인해 줄 독립적이고 공식적인 보고는 아직 나오지 않았습니다. 다시 말해, 아이들의 실제 건강 상태나 발달 상황은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습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허젠쿠이 박사가 밝힌 내용 외에 세 번째 유전자 편집 아기가 있다는 사실이 추가로 확인되었다는 점입니다. 이 아이에 대해서는 이름, 나이, 건강 상태 등 그 어떤 정보도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지금 당장은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여도, 시간이 지나면서 암, 신경 질환, 면역 이상 같은 예상치 못한 문제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결국, 이 아이들은 실험적 개입의 결과를 몸으로 감당하며 살아가야 할지도 모릅니다.
허젠쿠이 사건이 남긴 교훈: 책임 있는 과학의 길
허젠쿠이 사건은 과학계에 큰 충격을 남겼습니다. 이는 과학자의 호기심과 기술적 능력이 윤리적 책임과 사회적 합의를 뛰어넘을 때 어떤 위험이 발생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줍니다.
줄기세포와 유전자 편집 기술은 분명히 인류의 미래를 바꿀 수 있는 강력한 도구입니다. 암, 희귀질환, 불임 같은 난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치료법을 여는 희망을 주고 있죠. 하지만 동시에, 이 기술은 잘못 사용되었을 때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습니다. 허젠쿠이 사건은 바로 그 경계가 얼마나 얇고 위험한지를 보여준 대적인 사례입니다.
이 사건이 남긴 가장 큰 교훈은 명확합니다. 과학 기술의 발전은 반드시 윤리적 가이드라인과 책임 있는 검증 과정과 함께 나아가야 한다는 점입니다. 아무리 눈부신 성과라도, 사회적 논의와 투명한 절차 없이 이뤄진 연구는 결국 과학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리고, 오히려 기술의 발전을 늦출 수 있습니다.
결국 과학자들의 역할은 단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닙니다. 그 기술이 인류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성찰하고, 사회와 함께 합의된 길을 걸어가는 것까지 포함됩니다. 과학은 더 많은 자유를 얻어야 하지만, 그 자유는 언제나 책임 위에서만 빛날 수 있습니다.
허젠쿠이 박사의 이야기는 우리 모두에게 다시 한번 경고합니다. “책임 없는 과학은 결국 과학 자신을 위협한다.”
⚖️ 허젠쿠이 사건이 던진 3가지 교훈
1. 과학의 자유와 책임은 함께 간다 — 혁신적인 기술일수록 사회적 합의와 윤리적 가이드라인이 반드시 병행되어야 합니다.
2. 안전성과 투명성은 기본 원칙 — 검증되지 않은 기술을 밀실에서 적용하는 순간, 과학 전체에 대한 신뢰가 무너집니다.
3. 과학은 인류 전체를 위한 것 — 특정 개인의 성과나 욕심이 아니라, 인류 보편의 이익과 안전을 우선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