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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이 되기까지 (1) — 신약개발의 전체 지도 그리기

 

하나의 실험 결과가 실제 약으로 이어지기까지는 생각보다 긴 시간이 필요해요. 세포에서 의미 있는 변화가 보였다고 해서 곧바로 치료제가 되는 것은 아니고, 대부분의 후보는 검증 과정에서 걸러지게 되요 하지만 그 수많은 실패 속에서 아주 일부가 살아남아 결국 사람에게 쓰이는 약이 되죠. 이 시리즈에서는 그 여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따라가 보려고 해요. 오늘은 그 출발점, 그러니까 질병에서 약물 표적을 찾아내는 과정부터 시작해 볼께요.

목차

  • 신약개발의 전체 지도
  • 질병 기전을 이해한다는 것
  • Drug target은 어떻게 정해질까
  • Target validation, 확신 이전의 확인
  • Target-based discovery와 phenotypic discovery
  • 어떤 생물학적 문제를 약으로 바꿀 수 있을까

1. 신약개발의 전체 지도

본격적으로 들어가기 전에, 전체 그림을 먼저 그려볼게요. 신약개발은 대략 이런 순서로 흘러가요.

질병을 이해하고 → 표적을 찾고 검증하고 → 그 표적에 작용하는 물질을 대량으로 스크리닝 하고 → 전임상 시험을 거쳐 → 임상시험, 그리고 승인까지로, 이번 편이 다루는 부분은 질병의 타겟에 대한 것이에요.

신약개발의 전체 흐름 - 1편은 '타겟 발굴 - 검증' 단계를 다룹니다

2. 질병 기전을 이해한다는 것

모든 신약개발의 출발점은 결국 질병이 왜 생기는 가를 이해하는 데 있어요.

그런데 질병의 원인은 한 가지 때문이 아니라, 세포 안의 단백질이나 유전자에 이상이 생긴 경우도 있지만, 면역계가 정상 조직을 스스로 공격하거나, 바이러스나 세균 같은 외부 병원체가 침입하거나, 호르몬이나 신호전달 체계의 균형이 깨지거나, 장기와 조직 사이의 상호작용 자체가 어긋나는 경우 등  다양해요. 

 

 

여기에 유전적 변이와 환경 요인이 함께 얽혀서 나타나는 경우도 적지 않고요.

이런 이야기를 통틀어 질병 기전이라고 부르는데, 이미 여기서부터 신약개발이 왜 어려운 일인지가 조금씩 알 수 있죠.

3. Drug target (약물 표적)은 어떻게 정해질까 

질병이 생기면 세포 안의 어떤 작용이 지나치게 활발해지거나, 반대로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도 해요.

이는 세포 안의 특정 단백질이나 효소가 될 수도 있고, 면역세포 표면의 수용체가 될 수도 있고,

병원체 자체가 가진 단백질이 될 수도 있어요. 

 

연구자는 그중에서 약으로 조절했을 때 질병의 흐름을 바꿀 가능성이 있는 대상을 찾아요.

이 생물학적 대상을 drug target, 즉 약물 표적이라고 불러요.

연구자들은 질병과 관련된 여러 후보 중에서 약이 작용할 표적을 골라요
연구자들은 질병과 관련된 여러 후보 중에서 약이 작용할 표적을 골라요

 

약물 표적은 단백질이나 효소, 세포가 신호를 받는 수용체, 때로는 RNA가 될 수도 있어요.

연구자들은 환자의 조직과 유전자 정보를 살펴보고, 질병이 있을 때 반복해서 달라지는 대상을 찾거나 기존 연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알려진 후보를 좁혀가죠. 

쉽게 말하면, 질병을 일으키는 생물학적 원인들 중에서 약으로 조절할 수 있는 대상을 찾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어요.

4. Target validation (검증), 확신 이전의 확인

가설만으로는 부족해요.

이 표적을 실제로 조절했을 때 질병이 정말 좋아지는지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한데,

이걸 target validation(검증)이라고 불러요.

 

유전자를 knockout (완전히 없애거나 작동하지 않게 하기) 하거나 knockdown(유전자의 발현을 줄이기) 해서 그 표적이 없어졌을 때 질병 표현형이 어떻게 바뀌는지 보는 genetic validation(유전적 검증), 이미 알려진 화합물로 그 표적을 억제하거나 활성화해서 반응을 확인하는 pharmacological validation(약리학적 검증) 등이 대표적이에요.

 

하지만 처음에는 꽤 그럴듯해 보였던 표적도, 임상 단계에 가면 기대한 효과를 보여주지 못하는 경우가 있어요.

그 이유는 여러 가지겠지만, 초기 검증이 충분하지 않았거나 실험모델이 실제 환자의 질병을 충분히 닮지 못했던 점도 영향을 줄 수 있어요. 결국 중요한 것은 표적 하나를 찾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표적이 정말 질병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지를 여러 방법으로 확인하는 일이겠죠.

정리하면 — Target validation은 "이 표적이 진짜 질병과 관련 있다"는 걸 실험적으로 뒷받침하는 단계예요. 이 단계를 건너뛰거나 대충 넘어가면, 훨씬 뒤 단계인 임상시험에서 실패 비용을 치르게 될 가능성이 커진다고 볼 수 있어요.

5. Target-based discovery와 phenotypic discovery

신약 후보를 찾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눠볼 수 있어요.

 

Target-based discovery(표적 중심 신약 발굴)는 먼저 질병과 관련된 특정 표적을 정한 뒤,

그 표적의 작용을 막거나 높일 수 있는 물질을 찾는 방식이에요. 예를 들어 어떤 효소가 질병을 악화시킨다고 판단되면, 그 효소의 작용을 줄이는 물질을 찾는 거죠. 무엇을 조절할지 먼저 정해두고 시작하기 때문에, 가설을 세운 뒤 그 가설에 맞는 물질을 찾는 접근이라고 볼 수 있어요.

 

반대로 phenotypic discovery(표현형 중심 신약 발굴)는 표적을 처음부터 정하지 않아요. 

대신 세포나 동물모델에 여러 물질을 처리한 뒤, 세포가 더 건강해지거나 염증이 줄어드는 것처럼 원하는 변화가 나타나는 물질을 먼저 찾습니다. 여기서 phenotype(표현형)은 세포나 생물에서 실제로 관찰되는 변화나 특징을 뜻해요.

표현형 중심 신약 발굴에서는 효과가 있는 물질을 먼저 찾은 뒤, 그 물질이 어떤 표적과 경로를 통해 작용하는지를 거꾸로 추적해요. 이를 mechanism of action, MoA(작용기전)를 밝히는 과정이라고 해요. 

어느 쪽이 더 나은지는 사실 딱 잘라 말하기 조심스러운 부분이에요.

과거에는 질병과 관련된 분자 표적을 먼저 정하는 target-based discovery(표적 중심 신약 발굴)에 많은 연구 자원이 집중됐어요. 하지만 승인된 신약의 출발점을 분석한 일부 연구에서는 phenotypic discovery(표현형 중심 신약 발굴)도 중요한 성과를 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죠.

 

요즘에는 두 방법 가운데 하나만 고집하기보다, 질병에 대해 알려진 정보와 사용할 수 있는 세포모델에 따라 접근법을 선택하거나 서로 함께 활용해요. 표적 중심으로 시작하더라도 세포에서 실제 변화가 나타나는지 확인하고, 표현형 중심으로 후보를 찾았다면 이후 어떤 표적과 경로에 작용하는지 밝혀가는 식이에요.

📊 참고 — 접근법별 first-in-class 신약 발굴 비교

분석 대상 기간 Phenotypic Target-based
1999–2008 (FDA 승인 50개 소분자) 28개 17개
1999–2013 (FDA 승인 113개 전체) 약 70%

두 연구는 어느 한 방법이 항상 우월하다는 뜻이라기보다, 분석 대상과 분류 기준에 따라 평가가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줘요.

6. 어떤 생물학적 문제를 약으로 바꿀 수 있을까

이 질문은 아마 1편 전체의 내용을 가장 잘 나타내는 질문이 아닐까 싶어요.

 

질병 기전을 이해하고, 약물 표적을 정하고, 그게 정말 유효한지 검증하는 이 모든 과정은

결국 하나의 생물학적 현상에서 사람이 약으로 조절할 수 있는 지점을 찾아가는 일이에요.

 

그리고 이 지점을 얼마나 정확하게 찾아내느냐에 따라, 이후 수년간 이어질 신약 개발의 방향도 크게 달라질 수 있어요.

 

다음 편에서는 이렇게 정해진 표적을 두고, 수많은 물질 가운데 실제로 반응하는 후보를 어떻게 골라내는지 살펴보려고 해요. 이를 위해 사용되는 assay와 screening 과정에 대해서 알아볼게요.

참고 자료
  • Swinney DC, Anthony J. "Phenotypic vs. Target-Based Drug Discovery for First-in-Class Medicines." Clinical Pharmacology & Therapeutics, 2013.
  • Eder J, Sedrani R, Wiesmann C. "The discovery of first-in-class drugs: origins and evolution." Nature Reviews Drug Discovery, 2014.
  • Full article: "The utility of target-based discovery." Expert Opinion on Drug Discovery,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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