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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 산업 · 빅파마 전략


노바티스가 '신약'이 아니라 '데이터'를 샀다

최근 Clarivate Life Sciences 블로그에 흥미로운 글이 하나 올라왔어요.
“Why longevity might be biopharma’s next big thing”이라는 제목의 글인데요.

 

Pharmas and biotechs are investing in new treatments for diseases of aging

Pharmas and venture capitalists are investing big sums in untangling the science of longetivity and driving development of new treatments for diseases of aging

clarivate.com

 

이 글은 노화 연구가 왜 이제 제약 산업의 전략 의제가 되고 있는지를 과학과 비즈니스 관점에서 설명하고 있어요.

실제로 최근 몇 년 사이 빅파마의 움직임을 보면,

이 질문은 단순한 미래 전망이 아니라 이미 시작된 변화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2024년 12월, 노바티스가 캘리포니아의 작은 바이오텍과 계약을 맺었어요.

계약 규모는 최대 5억 5천만 달러(약 7,600억 원).

그런데 이 거래에서 오간 것이 임상 중인 신약 후보도, 특정 기술 플랫폼의 라이선스도 아니었어요.

거래의 핵심 자산은 BioAge Labs가 수십 년에 걸쳐 축적한 인간 장수 데이터였다는 것이에요.

 

노바티스가 원한 건 이 데이터를 통해 "운동의 이점이 왜 나이 들면서 줄어드는지"를 분자 수준에서 파악하고,

거기서 새로운 약물 타깃을 찾는 것이었죠.

저는 이 딜이 빅파마가 longevity를 단순한 관심사가 아닌

전략 언어로 다루기 시작했다는 꽤 의미 있는 신호 중 하나라고 봐요.

🔎 Novartis × BioAge Labs 딜 (2024년 12월 18일)

노바티스 선지급 및 연구비 최대 $2천만 달러(약 280억 원) + 향후 마일스톤 최대 $5억 3천만 달러(약 7,300억 원).
BioAge의 종단(longitudinal) 인간 장수 데이터셋을 활용해 노화 관련 질환의 신규 약물 타깃 발굴이 목표.
노바티스의 Diseases of Aging and Regenerative Medicine (DARe) 사업부 주도.


왜 제약사는 노화를 이야기하기 시작할까: GLP-1이 증명한 것

사실 빅파마가 longevity를 들여다보기 시작한 배경에는 상당히 현실적인 이유가 있는데요.

 

2025년 전후로 다수의 블록버스터 의약품 특허가 만료되는 시기가 겹쳐 있거든요.

아스트라제네카, 머크, 브리스톨-마이어스 스퀴브 등 주요 제약사 모두 이른바 '특허절벽' 앞에 선 상황이고,

기존 파이프라인만으로는 이 공백을 채우기 쉽지 않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고민이에요.

 

그런 맥락에서 노화 생물학이 매력적으로 보이는 이유 중 하나는,

당뇨·심혈관 질환·인지 저하처럼 서로 다른 질환들에 하나의 공통 타깃이 연결될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물론 아직 가설에 가까운 이야기들도 많지만, 그 가능성 자체가 R&D 효율 측면에서 꽤 흥미로운 그림이 되는 거죠.

장수 산업은 정말 다음 바이오파마의 큰 흐름이 될까
하나의 기전이 여러 질환에 영향을 줄 수 있다면, 노화는 새로운 R&D 출발점이 될 수 있어요.

 

이 흐름을 잘 보여준 사례로 자주 언급되는 것이 GLP-1 계열 약물이에요.

(많은 분들이 아시겠지만) 오젬픽이나 위고비 같은 약물은 원래 당뇨와 비만 치료제로 개발됐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임상 데이터가 쌓이면서 심혈관 보호, 신장 기능 개선, 지방간 억제,

그리고 인지 기능에 대한 탐색적 결과들까지 보고되기 시작했어요.

아직 모든 게 확립된 건 아니지만, 하나의 기전이 이렇게 여러 노화 관련 표현형에 동시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노화 생물학의 주요 경로들이 서로 얽혀 있다는 가설과 맞닿아 있는 이야기거든요.

 

Eli Lilly와 Novo Nordisk가 자사 GLP-1 프로그램에 "healthspan 연장"이라는 프레이밍을 가져가기 시작했다는 점도 눈에 띄어요. 또 Eli Lilly는 티르제파타이드(Mounjaro/Zepbound)와 함께 근육 보존을 목적으로 한 신규 화합물 병용 임상도 진행하고 있는데요. 체중이 빠질 때 같이 줄어드는 근육량을 약으로 유지한다는 발상 자체가, 노화 취약성에 직접 개입하려는 시도로 읽혀요.


데이터가 파이프라인이 되고, AI가 속도를 바꾸다

BioAge의 접근 방식이 개인적으로 흥미롭게 느껴졌던 건, 출발점이 다르기 때문이에요.

전통적인 신약 개발이 '이 질환의 원인이 뭘까'에서 시작한다면, BioAge는 반대예요.

'건강하게 잘 늙는 사람들의 분자 프로파일을 오랫동안 추적하면, 거기서 치료 타깃이 나오지 않을까'라는 질문에서 출발하거든요.

 

질병 모델이 아니라 회복탄력성 모델에서 신약을 찾는 거예요.

노바티스가 이 회사의 데이터에 수천억 원을 지불한 건,

그 접근 방식이 다음 세대 파이프라인의 씨앗이 될 수 있다는 판단이었을 거예요.  

질병 대신 건강한 데이터로 발견하는 새로운 타깃

 

많은 분들이 이미 아시는 것처럼 여기에 AI라는 변수도 함께 움직이고 있어요.

2025년 6월, Insilico Medicine이 AI로 발굴하고 설계한 약물의 임상 2a 결과를 Nature Medicine에 게재했어요.

특발성 폐섬유화증(IPF)을 대상으로 한 71명 규모의 시험이었는데,

고용량 투여군은 12주 후 폐 기능이 평균 +98.4mL 향상된 반면 위약군은 -20.3mL 감소했어요.

아직 소규모 시험이라 섣불리 결론짓기는 어렵지만,

AI가 만든 분자가 사람에게서 유의미한 결과를 보여줬다는 자체가 업계에서 꽤 주목받은 사례예요.

 

흥미로운 건 속도예요.

통상 타깃 발굴에서 임상 후보 물질 선정까지 평균 2.5~4년 걸리는 데 비해,

Insilico는 이 과정을 13개월로 압축했다고 밝혔어요.

물론 모든 AI 약물 개발이 이 속도로 이뤄질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파이프라인의 타임라인 자체에 변화 가능성이 생겼다는 점은

빅파마가 AI 플랫폼에 관심을 갖는 이유 중 하나가 되고 있지 않을까 싶어요.


자본이 먼저 알아챈 변화

전략과 과학만 바뀐 게 아니에요. 자본 흐름도 달라졌습니다.

Longevity.Technology의 2024년 연간 보고서에 따르면,

그해 longevity 섹터 투자 총액은 84억 9천만 달러(약 11조 7천억 원)로

2023년(38억 2천만 달러, 약 5조 3천억 원)의 두 배를 넘어섰어요.

 

금액도 금액이지만, 투자의 성격이 바뀐 점이 더 눈에 띄어요.

초기 아이디어 베팅이 아니라 후기 단계 VC가 전체의 31%를 차지했거든요.

2024년 9월 BioAge Labs가 나스닥에 상장할 때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 시티그룹이 주관사로 나선 것도

그 흐름의 일부로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 2024년 Longevity 투자 핵심 수치 (Longevity.Technology 연간 보고서)
  • 총 투자액: $84.9억 달러(약 11조 7천억 원) / 331건 딜 (2023년 대비 +122%)
  • 후기 단계 VC 비중: 전체의 31% — 실행 단계 집중
  • 플랫폼 기술(longevity discovery platforms) 유치액: $26.5억 달러(약 3조 7천억 원)
  • 미국 집중도: 전체 딜의 84% 점유

아직 넘어야 할 벽

다만 이런 흐름이 곧 임상 승인으로 이어진다는 뜻은 아니에요.

현실적으로 꽤 높은 장벽들이 남아 있거든요.

그중 가장 근본적인 건, FDA가 아직 "노화" 자체를 치료 가능한 적응증으로 공식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이에요.

그래서 노화를 타깃으로 하는 약이라도 임상에서는 당뇨병성 황반변성, IPF, 비만처럼 구체적인 질환명을 가져야 해요.

 

시간의 문제도 있어요.

건강수명 연장 효과를 입증하려면 원칙적으로 수십 년의 추적이 필요한데, 현실적으로 그렇게 긴 임상은 어렵죠.

그래서 에피제네틱 시계 같은 생물학적 나이 바이오마커를 대리 지표(surrogate endpoint)로 활용하는 방향이 논의되고 있는데,

아직 FDA가 이를 공식 엔드포인트로 완전히 수용하기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한 상황이에요.

이 부분은 에피제네틱 시계를 다룬 이전 글에서 좀 더 자세히 다뤘어요.


왜 지금인가

노화 생물학이 "흥미로운 기초과학"에서 "당장 투자가 이뤄지는 산업 영역"으로 전환되는 속도가 이렇게 빠를 거라고는

솔직히 예상하지 못했어요.

 

제가 보기엔, 특허 절벽이라는 현실적인 압박, GLP-1이 보여준 상업적 가능성,

그리고 AI가 만들어낸 개발 타임라인의 단축이 시기적으로 맞물리면서

빅파마 입장에서 longevity가 무시하기 어려운 선택지가 된 것 같아요.

자본이 먼저 움직였고, 전략 부서가 뒤따르는 순서로요.

 

한국의 입장도 한번 생각해 볼 만해요. 세계적인 수준의 제조 인프라, 빠르게 성장 중인 CRO·CDMO 역량,

그리고 이미 진입한 고령화 사회라는 조건이 맞물려 있거든요.

longevity 분야에서 데이터와 AI 기반 플랫폼이 경쟁의 핵심이 되어간다면,

한국 바이오 기업들에게도 진입 공간이 열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에요.

 

물론 이 분야가 어떻게 펼쳐질지는 아직 누구도 확실히 말하기 어려워요.

다만 흐름 자체는 이미 만들어지고 있는 것 같고, 그 방향을 지켜보는 게 꽤 흥미롭다는 건 분명해요.


참고문헌 및 출처
  1. Longevity.Technology (2025). 2024 Annual Longevity Investment Report. longevity.technology/investment/report
  2. BioAge Labs & Novartis (2024). Multi-Year Collaboration Press Release. Globe Newswire, December 18, 2024. ir.bioagelabs.com
  3. Xu Z, et al. (2025). A generative AI-discovered TNIK inhibitor for idiopathic pulmonary fibrosis: a randomized phase 2a trial. Nature Medicine. doi:10.1038/s41591-025-03743-2
  4. UBS (2025, March). Longevity Market Outlook: $5.3T → $8T by 2030. Via Entrepreneur.com, February 28, 2026.
  5. Fiercebiotech (2024). Novartis and BioAge take on age-related diseases in $550M pact. fiercebiotec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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