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글에서는 3D 바이오프린팅이 줄기세포와 바이오 잉크를 활용해 살아있는 조직을 만들어내는 기본 원리를 살펴보았습니다. 프린터가 한 층씩 쌓아 올려 구조물을 완성하는 과정은 건축가가 벽돌을 차곡차곡 쌓아 올려 건물을 짓는 모습과도 닮아 있습니다.
하지만 피부처럼 비교적 단순한 조직을 만드는 것과 달리, 간이나 신장처럼 복잡한 장기를 구현하는 일은 훨씬 더 큰 도전입니다. 장기는 수십억 개의 세포가 정교한 네트워크를 이루고, 혈관을 통해 끊임없이 영양과 산소를 공급받아야만 제대로 기능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실제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장기를 제작하는 것은 바이오프린팅 분야에서 풀어야 할 중용한 과제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 글에서는 바이오프린팅이 실제 기능성 장기 제작을 위해 넘어야 할 기술적 난관들이 무엇인지, 그리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최신 혁신 기술들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복잡한 생체 환경의 재현: 미세혈관 구축의 난제
우리 몸의 모든 세포는 생존을 위해 산소와 영양분을 공급받고, 동시에 노폐물을 배출해야 합니다. 이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 바로 촘촘히 얽혀 있는 혈관 네트워크입니다. 따라서 실제 장기를 인공적으로 제작할 때 가장 큰 기술적 난관은, 두꺼운 조직 내부 깊숙한 곳까지 혈액을 원활히 공급할 수 있는 미세혈관 네트워크(microvasculature)를 어떻게 구현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장기 내 산소와 영양분 공급을 위한 혈관 구조의 중요성
바이오프린팅으로 만들어진 조직이 수 밀리미터 이상 두꺼워지면, 표면 가까운 세포는 비교적 쉽게 영양분과 산소를 받지만 중심부에 있는 세포들은 공급이 원활하지 않아 빠르게 사멸하기 시작합니다. 따라서 아무리 정밀하게 세포를 인쇄하더라도, 혈관 구조가 형성되지 않으면 실제로 기능하는 장기가 되기는 어렵습니다. 기능성 장기 제작을 위해서는 세포 프린팅과 동시에, 혹은 이후 과정에서 반드시 혈관 네트워크가 함께 구축되어야 합니다1.
미세혈관을 함께 프린팅 하는 기술적 어려움과 해결책
문제는 미세혈관의 구조가 매우 정교하다는 점입니다. 지름이 머리카락보다 훨씬 가는 수십 마이크로미터 수준이며, 이 복잡한 네트워크를 인공적으로 그대로 재현하기 위해서는 나노 수준의 정밀 제어 기술이 요구됩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연구자들은 다양한 접근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희생 잉크(Sacrificial Ink) 방식: 조직을 바이오 잉크로 프린팅할 때, 동시에 특정 조건에서 녹아 사라지는 잉크를 이용해 혈관 모양의 틀을 만듭니다. 이후 잉크를 제거하면 빈 통로가 남아 혈액이 흐를 수 있는 혈관 채널로 활용됩니다.
자발적 혈관 형성(Self-assembly) 유도: 혈관을 이루는 내피세포(endothelial cell)를 바이오 잉크에 포함시켜, 프린팅된 구조물 내부에서 이 세포들이 스스로 모여 혈관을 형성하도록 유도하는 방법입니다. 실제 생체 환경을 모방하여 세포가 자율적으로 네트워크를 만드는 과정을 활용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기능성 장기 모델 제작 기술: 오가노이드와의 결합
바이오프린팅이 주로 장기의 ‘형태와 구조’를 인공적으로 만드는 기술이라면, 오가노이드(organoid)는 줄기세포가 스스로 분화하여 ‘기능을 갖춘 미니 장기’를 형성하는 기술입니다. 두 기술은 각기 다른 강점을 가지고 있으며, 최근에는 이를 결합해 인공 장기 제작의 현실성을 높이려는 시도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바이오프린팅과 오가노이드 기술의 융합
오가노이드는 줄기세포로 특정 장기의 세포 구성과 기능을 부분적으로 재현하는 3차원 세포 구조물입니다. 뇌, 간, 신장 등 다양한 장기를 모방할 수 있으며, 실제 인체 조직과 유사한 생리적 반응을 보이는 것이 큰 특징입니다. 하지만 오가노이드는 대체로 크기가 수 밀리미터 수준으로 작고, 성장 과정에서 불규칙한 형태를 보이기 때문에 연구와 응용에 한계가 있었습니다.
바이오프린팅은 이러한 한계를 보완할 수 있습니다. 프린팅 기술을 통해 오가노이드가 자리 잡고 성장할 수 있는 정교한 구조적 틀을 제공하거나, 오가노이드들을 일정한 패턴으로 배치함으로써 보다 크고 체계적인 장기 모델을 만들 수 있습니다. 즉, 오가노이드가 제공하는 ‘기능적 정밀성’과 바이오프린팅이 제공하는 ‘구조적 정밀성’을 결합해, 연구자들은 기존보다 훨씬 현실적인 인공 장기를 구현할 수 있습니다2.
실제 적용 사례와 의미
이러한 융합 기술은 이미 여러 연구에서 성과를 보이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바이오프린팅으로 간 구조물을 제작한 뒤, 그 안에 간 오가노이드를 배치하고 혈관과 유사한 채널을 형성하면, 약물 대사 능력을 갖춘 인공 간 모델을 구현할 수 있습니다. 이 모델은 동물 실험의 한계를 보완하여 신약 후보 물질의 효능과 독성을 보다 정확하게 평가하는 데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습니다.
비슷한 방식으로, 뇌 오가노이드를 활용해 신경 네트워크가 포함된 인공 뇌 모델을 제작하면, 신경계 질환 연구나 신경 독성 평가에 있어 새로운 접근이 가능해집니다. 이러한 기능성 장기 모델은 단순히 실험을 위한 도구에 그치지 않고, 향후에는 환자 맞춤형 치료제 개발과 개인화된 의학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소재의 혁신: 생체적합성 바이오 잉크의 진화
바이오프린팅이 단순히 ‘기계적 구조를 쌓아 올리는 기술’이 아니라 실제 살아있는 조직으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세포가 잘 정착하고 생존하며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이 필수적입니다. 이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 바로 바이오 잉크(bio-ink)입니다. 따라서 인공 장기 제작의 성패는 세포와 친화적으로 작용하는 잉크 소재의 개발에도 무엇보다 중요함을 시사합니다.
프린팅 효율과 세포 생존을 모두 만족시키는 바이오 잉크 개발 동향
초기의 바이오 잉크는 알긴산(alginate), 젤라틴(gelatin) 등 비교적 단순한 생체 고분자 물질을 주로 사용했습니다. 이들은 물리적으로 다루기 쉽고, 안정적인 구조 형성에는 장점이 있었지만, 세포가 분화하고 복잡한 조직을 형성하는 데 필요한 생화학적 신호를 충분히 제공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최근 연구는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세포가 실제 인체 환경에서 만나는 단백질, 성장인자, 혹은 세포외기질(ECM, extracellular matrix) 성분을 잉크에 포함시키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세포가 “이곳이 몸속의 환경과 유사하다”는 신호를 받아 더 자연스럽게 성장하고, 조직화 과정을 가속할 수 있습니다. 특히 줄기세포와 같은 민감한 세포군의 경우, 이러한 생물학적 특성이 반영된 바이오 잉크가 장기적인 생존과 분화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3.
하이드로젤(Hydrogel)과 '스마트 소재'의 등장
바이오 잉크의 핵심 재료 중 하나는 하이드로젤(hydrogel)입니다. 하이드로젤은 수분을 풍부하게 함유한 젤 물질로, 세포에 필요한 수분과 영양분을 공급하면서도 프린팅 후 안정적인 구조를 유지할 수 있게 합니다.
최근에는 한 단계 더 나아가, 외부 자극(예: 빛, 온도, pH 변화)에 반응해 물리적 성질이 달라지는 ‘스마트 하이드로젤(smart hydrogel)’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이 기술을 활용하면 프린팅 직후 액체 상태였던 잉크를 원하는 타이밍에 고체처럼 굳혀, 복잡한 3차원 구조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습니다. 이는 특히 미세혈관 네트워크나 다층 구조물처럼 정밀도가 요구되는 조직 제작에 유리합니다.
향후 발전 가능성과 응용
앞으로의 바이오 잉크 연구는 구조적 안정성을 확보하는 단계에서, 면역 반응을 최소화하고 환자 맞춤형 치료에 적용할 수 있는 소재 개발로 확장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예를 들어, 환자 자신의 세포외기질 성분을 추출해 바이오 잉크에 활용한다면, 인공 장기 이식 시 거부 반응을 줄일 수 있습니다. 또한 항암제, 항염증제 같은 약물을 바이오 잉크에 미리 포함시켜 프린팅과 동시에 치료 효과를 부여하는 ‘치료적 바이오 잉크’의 가능성도 연구되고 있습니다.
끊임없는 도전과 혁신이 열어 미래
바이오프린팅 기술은 아직 완성 단계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미세혈관 구축, 오가노이드와의 융합, 바이오 잉크 소재의 혁신과 같은 다양한 도전을 통해 꾸준히 진화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난제를 하나씩 극복한다면, 단순한 형태 구현에서 실제로 기능을 수행하는 인공 장기 제작에 한 걸음 더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발전은 장기 이식을 기다리는 환자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동물실험의 한계를 넘어서는 정밀한 신약 개발 플랫폼을 가능하게 할 잠재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나아가, 미래에는 환자 맞춤형 장기를 제작하여 개인화된 치료를 실현하는 시대가 열릴 수도 있습니다.
참고 논문 및 자료:
1 A. M. Lee, et al. (2018). "Challenges and Opportunities of Vascularization for 3D Bioprinting." Tissue Engineering Part B: Reviews, 24(1), 1-15. (3D 바이오프린팅에서 혈관 구축의 중요성과 기술적 과제에 대한 내용)
2 M. A. Usman, et al. (2020). "Bioprinting and organoids: A powerful combination for generating complex tissue models." Materials Today Bio, 7, 100060. (바이오프린팅과 오가노이드를 결합하여 복합 조직 모델을 만드는 기술에 대한 내용)
3 V. Leal-Egana, et al. (2018). "Bioinks for 3D printing of soft tissues." European Journal of Pharmaceutical Sciences, 124, 1-13. (바이오프린팅에 사용되는 생체 적합성 바이오 잉크의 개발 동향과 특성을 다룬 논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