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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차 연구자가 들려주는 알기 쉬운 줄기세포 이야기


목차

 

줄기세포 연구의 새로운 무대, Microphysiological Systems

지난 글에서는 줄기세포로부터 탄생하는 '미니 장기'인 오가노이드에 대해서 알아봤습니다. 오가노이드가 생체 내 3차원 구조와 자가 조직화 능력을 모사하며 질병 연구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음을 말씀드렸습니다. 오늘은 그 연장선상에서, 또 다른 혁신적인 기술인 Microphysiological Systems (MPS)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MPS는 일명 'Organ-on-a-Chip'으로도 불리며, 미세유체 기술을 활용해 인체 장기의 미세 환경을 정밀하게 제어하고 모사하는 시스템입니다. 오가노이드가 '장기의 구조'를 만들어낸다면, MPS는 그 장기가 놓인 '생리적 환경'을 체외에서 재현합니다. 줄기세포를 기반으로 더욱 정교해진 이 기술이 어떻게 신약 개발의 판도를 바꾸고, 궁극적으로는 인체 기능을 이해하고 질병을 치료하는 데 기여하는지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Microphysiological Systems (MPS)란 무엇인가?

Microphysiological Systems (MPS)는 생체 내 장기의 기능적 단위를 모사하기 위해 설계된 미세 규모의 시스템을 총칭합니다. 이는 단일 세포 또는 조직을 배양하는 것에서 나아가, 장기 특유의 복잡한 생리적 환경과 기능을 마이크로칩 위에서 재현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 Organ-on-a-Chip (OOC): MPS의 대표 주자

MPS의 가장 대표적인 형태이자 핵심 개념은 바로 Organ-on-a-Chip (OOC)입니다. OOC는 실리콘(PDMS)이나 유리와 같은 투명한 소재로 만들어진 작은 마이크로칩 위에 세포를 배양할 수 있는 미세 채널과 챔버를 정교하게 설계한 것입니다. 이 칩은 실제 장기의 미세 환경, 예를 들어 혈액이나 림프액이 흐르는 것과 유사한 유체 흐름, 특정 세포에 가해지는 기계적 장력, 또는 여러 종류의 세포 간 상호작용 등을 재현할 수 있도록 고안됩니다. 연구자들은 이 칩 위에 줄기세포로부터 분화된 특정 장기 세포(예: 폐 세포, 간세포, 심장 세포)를 배양하여, 실제 장기처럼 기능하는 '미니 장기 시스템'을 손 안에서 구현합니다1.

▶ MPS와 오가노이드: 개념적 차이와 상호 보완성

지난 글에서 다룬 오가노이드와 MPS는 둘 다 '생체 모방'을 목표로 하지만, 접근 방식과 강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 오가노이드: 주로 줄기세포의 자가 조직화(Self-organization) 능력에 기반하여 실제 장기의 복잡한 3차원적 구조와 세포 다양성을 모사하는 데 강점이 있습니다. 이는 마치 씨앗이 흙(매트릭스)과 물(배지) 속에서 스스로 나무(장기)를 형성하는 것과 유사합니다.
  • MPS/OOC: 미세유체 기술과 정밀 공학적 설계를 통해 장기의 동적인 생리적 환경(dynamic physiological environment)을 재현하는 데 중점을 둡니다. 이는 마치 복잡한 파이프 시스템을 설계하여 물의 흐름, 압력, 온도 등을 정확하게 제어하는 것과 같습니다. 세포 자체의 자가 조직화보다는 외부 환경 제어를 통한 기능 유도에 더 강점이 있습니다.

이 둘은 경쟁 관계가 아닌 상호 보완적인 관계에 있습니다. 최근에는 이 두 기술의 장점을 결합한 오가노이드-온-어-칩(Organoid-on-a-Chip, OrgOC) 기술이 각광받고 있습니다. 이는 자가 조직화된 오가노이드를 MPS 칩 내부에 통합하여, 오가노이드의 생체 유사성과 MPS의 정밀한 환경 제어 능력을 동시에 활용함으로써 훨씬 더 정교하고 기능적인 인체 모델을 구축할 수 있게 합니다2.


MPS, 어떻게 작동하는가? 미세유체 기술과 생체 환경 모사

MPS의 핵심은 장기 내 세포들이 경험하는 다양한 물리적, 생화학적 신호를 재현하는 능력에 있습니다. 이는 주로 미세유체학적 설계와 정교한 제어 시스템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줄기세포 기반 Microphysiological Systems (MPS): 손 안의 인체 환경, 정밀 제어의 과학

▶ 미세유체학(Microfluidics): 정밀한 흐름 제어

MPS 칩은 미세유체학(Microfluidics) 원리를 기반으로 설계됩니다. 이는 마이크로미터(μm) 수준의 작은 채널을 통해 액체(배지, 약물 등)의 흐름을 정밀하게 제어하는 기술입니다. 장기 내 혈관이나 소화관처럼 끊임없이 유체가 흐르는 환경을 모사하여, 세포에 신선한 영양분과 산소를 공급하고 노폐물을 효과적으로 제거할 수 있습니다. 이는 정체된 2D 배양 시스템에서 발생하는 영양분 고갈이나 노폐물 축적 문제를 해결하여 세포의 생존성과 기능성을 크게 향상시킵니다3.

▶ 동적 생체 환경 모사: 혈류, 기계적 자극, 영양분 교환

MPS는 실제 장기의 동적인 생리 환경을 모사할 수 있습니다.

  • 혈류 모사: 심장 세포나 혈관 내피 세포를 배양하는 칩에서는 맥박과 유사한 유체 흐름을 재현하여 실제 혈관 환경을 모사하고, 혈관 형성 및 기능을 연구합니다.
  • 기계적 자극: 폐 칩에서는 공기-액체 계면(air-liquid interface)과 주기적인 인장(stretching)을 가하여 폐포의 호흡 운동을 모사하고, 폐 질환 연구에 활용됩니다. 장 칩에서도 연동 운동과 유사한 기계적 자극을 제공하여 장의 기능을 재현합니다.
  • 영양분 및 물질 교환: 미세 채널과 투과성 막을 이용하여 세포로의 영양분 공급 및 약물 투여, 그리고 대사산물 배출을 효율적으로 조절하여 생체 내 물질 교환을 반영합니다.

▶ 실시간 센싱 및 모니터링 시스템

MPS는 세포의 반응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할 수 있는 다양한 센싱 기술과 통합됩니다. 전기화학 센서, 광학 센서, 바이오센서 등을 칩 내부에 내장하여 세포의 대사 활동, pH 변화, 산소 소비량, 세포 생존율, 특정 분자의 분비 등을 비침습적으로 측정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실시간 데이터는 약물 반응, 질병 진행 양상, 독성 여부 등을 빠르고 정확하게 평가하는 데 결정적인 정보를 제공합니다.


MPS의 주요 장점: 왜 신약 개발과 질병 연구에 필수적인가?

MPS 기술은 기존의 2D 세포 배양이나 동물 모델이 가진 한계를 극복하며, 신약 개발 및 질병 연구 분야에서 혁신적인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 높은 인간 생리 유사성과 예측 정확도

MPS의 가장 큰 장점은 인간 장기의 미세 환경과 생리적 기능을 높은 수준으로 모사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는 동물 모델에서 흔히 발생하는 종간 차이(species-specific differences) 문제를 해결하여, 약물 반응이나 질병 진행 양상이 실제 인간에게서 나타날 반응과 더 유사하게 예측될 수 있도록 합니다. 결과적으로 임상 시험에서 약물 실패율을 줄이고, 신약 개발 성공률을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습니다4.

▶ 약물 흡수, 분포, 대사, 배설 및 독성 (ADME/Tox) 평가 효율성

신약 개발 과정에서 약물의 안전성(독성)과 약동학적 특성(ADME)을 조기에 평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MPS는 간, 신장, 장과 같은 특정 장기 칩을 이용하여 약물의 대사 경로, 특정 장기 독성, 흡수율 등을 효율적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간 MPS는 약물이 간에서 어떻게 대사 되고 어떤 독성을 유발하는지 예측하는 데 매우 유용합니다. 이는 잠재적 부작용을 조기에 발견하여 개발 비용과 시간을 절감하는 데 기여합니다5.

▶ 고 처리량 스크리닝(HTS) 및 자동화 가능성

MPS 칩은 소형화되어 있어, 고처리량 스크리닝(High-throughput screening, HTS) 시스템과 결합하기 용이합니다. 수많은 약물 후보 물질을 동시에 스크리닝 하여 효능과 독성을 평가할 수 있는 자동화된 플랫폼을 구축할 수 있습니다. 이는 신약 후보 물질 발굴 과정을 가속화하고, 질병 모델에서 특정 약물의 효과를 대규모로 검증하는 데 필수적입니다.

▶ 규제 기관의 관심과 동물 실험 대체의 가능성

전 세계적으로 동물 복지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동물 실험 규제가 강화되면서, MPS는 동물 실험을 대체할 수 있는 유망한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미국 FDA를 비롯한 주요 규제 기관들은 MPS 기술의 잠재력을 인정하고 있으며, 신약 허가 과정에서 MPS 데이터를 활용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있습니다. 특히 미국에서는 2022년 'FDA 현대화법 2.0(FDA Modernization Act 2.0)'이 통과되어 동물 시험을 반드시 요구하지 않고도 신약 허가 신청이 가능해지는 법적 기반이 마련되면서 MPS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습니다6.


Multi-organ-Chip: 여러 장기를 연결하여 인체 시스템을 모사하다

우리 몸의 장기들은 독립적으로 기능하지 않고 서로 긴밀하게 상호작용합니다. 예를 들어, 약물은 간에서 대사 된 후 신장으로 배출되며, 이 과정에서 심장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습니다. 단일 장기 칩으로는 이러한 복합적인 장기 간 상호작용과 전신적 약물 반응을 평가하기 어렵습니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개발된 것이 바로 Multi-organ-Chip 또는 Body-on-a-Chip, Human-on-a-Chip이라고 불리는 시스템입니다.

 

Multi-organ-Chip은 여러 개의 장기 칩(예: 간 칩, 심장 칩, 뇌 칩)을 미세유체 채널로 연결하여, 각 장기 간의 생화학적 및 생리적 상호작용을 모사합니다. 이를 통해 연구자들은 약물이 인체 내에서 흡수, 분포, 대사, 배출되는 전 과정을 추적하고, 한 장기에서 발생한 변화가 다른 장기에 미치는 영향을 종합적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특정 약물이 간에서 대사된 후 생성된 대사산물이 심장에 독성을 유발하는지 여부를 Multi-organ-Chip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는 실제 인체 내 약물 반응을 훨씬 더 정확하게 예측하여 전신 독성 평가 및 약물 효능 검증에 혁명적인 통찰을 제공합니다7.

이러한 복합적인 시스템의 개발은 인체 생리 및 질병 메커니즘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키고, 특히 복잡한 만성 질환이나 전신 질환의 치료법 개발에 중요한 도구가 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MPS, 줄기세포 연구와 신약 개발의 새로운 표준을 제시하다

Microphysiological Systems (MPS), 즉 Organ-on-a-Chip 기술은 정교한 공학적 설계와 미세유체학의 결합으로, 연구실 안에 실제 인체 장기의 미세 환경을 재현하는 놀라운 능력을 보여주었습니다. 특히 줄기세포를 기반으로 구축된 MPS는 인간 생리적 관련성을 극대화하여 신약 개발의 효율성과 예측력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키고 있습니다. 동물 실험의 한계를 극복하고, 약물의 ADME/Tox 평가를 가속화하며, 궁극적으로는 개인 맞춤형 의학의 시대를 여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할 것입니다.

 

Multi-organ-Chip과 같이 여러 장기를 연결하여 인체 시스템 전체를 모사하려는 시도는 더욱 복잡한 생명 현상과 질병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통찰을 제공합니다. 이 기술은 아직 발전 초기 단계에 있지만, MPS는 줄기세포 연구와 함께 생명 과학의 미래를 이끌어갈 강력한 도구 중 하나가 될 것입니다. 규제 기관의 관심과 산업계의 투자 증가는 MPS가 곧 신약 개발의 표준으로 자리 잡을 것임을 시사합니다.  

참고 논문:

1. Ingber, D. E. (2020). Human organs-on-chips for drug discovery. *Nature Reviews Drug Discovery*, 19(5), 365-365.

2. Takebe, T., et al. (2014). Organoid-on-a-chip: Microfluidic integration of stem cell-derived organoids for drug screening. *Cell Stem Cell*, 14(3), 291-300.

3. Bhise, N. S., et al. (2016). Organ-on-a-chip platforms for drug discovery and development. *Trends in Biotechnology*, 34(8), 654-666.

4. Marx, U., et al. (2020). Biology-inspired microphysiological systems to decipher human-on-chip design principles. *Nature Reviews Methods Primers*, 1(1), 1-26.

5. Ewart, L., et al. (2022). Progress in human organ-on-a-chip engineering. *Nature Reviews Genetics*, 23(1), 17-31.

6. U.S. Food and Drug Administration (FDA). (2023). *FDA Modernization Act 2.0*. (Public Law 117-328, Section 301. Nonclinical testing). (참고 논문 번호는 법안이므로 검색을 통해 관련 자료를 찾을 수 있습니다.)

7. Trapecar, M., et al. (2020). Multi-organ-on-chip systems for drug discovery. *Drug Discovery Today*, 25(8), 1435-1448.

8. Huh, D., et al. (2010). Reconstituting organ-level lung functions on a chip. *Science*, 328(5986), 1662-1668. (폐-온-어-칩 연구)

9. Low, L. A., et al. (2021). Organs-on-chips: breaking through the preclinical bottleneck. *Expert Opinion on Drug Discovery*, 16(11), 1319-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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