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주말에 라이프 (Life, 2017)라는 SF 영화를 보게 됐습니다. 국제우주정거장에서 미지의 생명체를 연구하다가 벌어지는 긴장감 넘치는 이야기였는데, 놀랍게도 영화 속 실험 장면 중 ‘줄기세포’가 언급되는 순간이 있었죠. 막 우주 생물학과 줄기세포에 관한 블로그 시리즈를 구상하던 참이라, 영화와 현실이 교차되는 그 장면이 꽤 인상 깊었습니다.
물론 영화는 극적인 상상력으로 채워져 있지만, 실제 과학자들도 국제우주정거장(ISS)이라는 극한의 공간에서 줄기세포에 관한 실험을 수행하고 있다는 사실은 과학이 영화만큼이나 흥미롭다는 걸 새삼 느끼게 했습니다.
지난 글에서는 우주 탐험 시대가 인류의 몸에 던지는 생물학적 도전, 즉 미세 중력과 우주 방사선의 위협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그 해결의 실마리가 우리 몸의 재생과 유지보수를 담당하는 줄기세포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도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과학자들이 실제 우주 공간에서 어떤 줄기세포 연구를 수행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연구가 어떤 과학적·의학적 통찰을 안겨주는지를 소개하려 합니다.
미세 중력은 세포가 경험하는 물리적 환경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우주 방사선은 세포 유전체에 예측할 수 없는 영향을 줍니다. 이처럼 지구와는 전혀 다른 조건에서 줄기세포가 어떻게 반응하고 변화하는지를 이해하는 일은, 우주 탐사의 생물학적 리스크 대응뿐 아니라, 지구에서 발생하는 노화, 골다공증, 면역 질환, 암 등 다양한 질병의 메커니즘을 밝히는 데도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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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 중력과 뼈/근육 줄기세포: 우주인의 신체 손상 메커니즘
우주인들이 우주에 장기 체류할 경우 겪는 가장 흔한 증상은 뼈와 근육의 손실입니다. 이는 미세 중력 환경에서 줄기세포가 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합니다. 과학자들은 메젠키말 줄기세포(Mesenchymal Stem Cells, MSCs)를 ISS로 보내 미세 중력이 이들의 분화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했습니다.
메젠키말 줄기세포(MSCs) 실험: 뼈를 만드는 대신 지방을 만들다
메젠키말 줄기세포는 뼈, 연골, 지방, 근육 등 다양한 조직으로 분화할 수 있는 다능성 줄기세포입니다. 지구에서는 이들이 주로 뼈를 만드는 골아세포(osteoblast)로 분화하여 뼈를 튼튼하게 유지하는 데 기여합니다. 하지만 ISS에서 진행된 연구에 따르면, 미세 중력 환경에서 배양된 MSCs는 뼈를 만드는 분화가 억제되고, 대신 지방을 만드는 지방세포(adipocyte)로 분화하는 경향이 증가하는 현상이 관찰되었습니다1, 2.
이는 마치 세포가 중력이 존재하지 않는 환경에서는 뼈조직 유지의 필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환경적으로 더 유리한 방향인 지방세포 분화를 선택하는 것처럼 해석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결과는 우주인이 겪는 뼈와 근육 손실의 분자적 원인을 설명할 수 있는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합니다.
지구에서의 노화 및 근골격 질환 연구에 대한 시사점
우주에서의 MSCs 실험은 우주인의 건강에 관한 연구 뿐만 아니라 지구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근골격계 질환에 대한 이해에도 새로운 통찰을 제공합니다. 특히 노화와 함께 발생하는 골다공증(osteoporosis)과 근감소증(sarcopenia)은 MSCs의 분화 능력 저하 및 기능 이상과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우주 환경은 이러한 질환의 병리적 진행 과정을 단시간 내에 관찰할 수 있게 해주는 ‘가속화된 질병 모델’을 구현하는 장으로 활용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주에서 MSCs의 뼈 생성 기능이 억제되는 원인을 밝히는 연구는, 지구상의 골다공증 치료 전략 개발에 있어서도 중요한 돌파구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우주 방사선과 조혈모세포: 면역 체계의 붕괴를 막아라
우주 공간의 또 다른 위협은 우주 방사선입니다. 특히 장기 우주 임무에서는 지속적인 방사선 노출에 노출되며, 이는 DNA 손상과 면역 기능 저하를 초래해 건강에 중대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인체의 면역 체계는 조혈모세포(Hematopoietic Stem Cells, HSCs)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우주 방사선이 HSCs에 미치는 영향을 파악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조혈모세포(HSCs) 실험: DNA 손상과 기능 저하의 증거
과학자들은 ISS에 HSCs를 보내 우주 방사선에 노출시킨 후, 지구로 가져와 DNA 손상 정도와 유전자 발현 변화를 분석하는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연구 결과, 우주 방사선에 노출된 HSCs는 DNA 손상이 증가하고, 자가 복제 및 분화 능력에 영향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는 HSCs의 기능 저하가 우주인의 면역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3. 이 연구는 우주인의 면역 체계를 보호하고, 방사선 피폭에 대한 치료법을 개발하는 데 필수적인 정보를 제공합니다.
면역력 저하와 우주 질병의 연관성
면역 체계가 약화되면 우주인은 감염성 질환에 더 취약해질 뿐만 아니라, 평소 잠복해 있던 바이러스(예: EBV, CMV 등)가 재활성화될 위험도 증가합니다. 또한 면역 시스템은 암세포의 감시와 제거에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는데, HSCs의 기능 저하는 이 같은 암 감시 기능의 저해로 이어질 수 있어 암 발생 위험 또한 높아질 수 있습니다. 결국, 조혈모세포의 건강성을 유지하는 것은 감염 방지와 더불어 종양 발생 억제에도 기여하며, 장기 우주 임무의 성공과 우주인의 생명 유지에 중요한 생물학적 기반을 제공합니다.
미세 중력이 준 뜻밖의 선물: 3D 세포 배양 및 오가노이드의 혁신
미세 중력은 줄기세포에 부정적인 영향만 미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지구에서는 불가능했던 독특한 연구 기회를 제공하며, 줄기세포의 잠재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었습니다.
우주, 최고의 '자연 바이오리액터'
지구에서는 중력 때문에 세포들이 배양 접시 바닥에 평평하게 퍼지거나, 뭉쳐도 아래로 가라앉아 불균일한 덩어리를 형성합니다. 하지만 미세 중력 환경에서는 이러한 중력의 영향이 제거되므로, 세포들이 자연스럽게 3차원적인 구형 집합체(spheroids)를 형성합니다. 이러한 집합체는 지구에서보다 더 크고 균일하며, 실제 조직과 유사한 구조와 기능을 가집니다4. 우주는 줄기세포가 중력의 방해 없이 스스로 조직화되는 최고의 '자연 바이오리액터'가 되는 셈입니다.
우주 오가노이드의 가능성: 질병 모델링과 약물 스크리닝
미세 중력 환경에서의 3D 세포 배양은 오가노이드(organoids) 연구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습니다. 특히 2021년 NASA와의 협력으로 국제우주정거장(ISS)에서 수행된 뇌 오가노이드 실험은 이러한 가능성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대표 사례입니다. 이 실험에서는 유도만능줄기세포(iPSCs)로부터 유도된 대뇌 피질 및 도파민성 뉴런 오가노이드를 ISS에서 배양하고, 이를 지구에서 동일하게 배양한 오가노이드와 비교 분석했습니다5.
그 결과, 우주에서 배양된 오가노이드는 세포 증식 유전자 발현은 낮고 뉴런 성숙 관련 유전자는 더 활발히 발현되어, 더욱 빠르고 균일한 분화를 보였습니다. 조직학적으로도 중력의 영향을 받지 않는 환경에서 세포들이 고르게 성장하면서 지구보다 더 정교하고 대칭적인 3차원 구조를 형성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기능적 측면에서도 우주 오가노이드는 더 빠르게 성숙했으며, 염증 반응과 세포 스트레스 관련 유전자 발현이 낮아 보다 안정적인 발달 환경이 제공된 것으로 분석됩니다. 이러한 결과는 미세 중력이 오가노이드 발달의 정확도와 효율성을 높일 수 있음을 보여주며, 알츠하이머병, 파킨슨병 등 신경 퇴행성 질환의 연구에 있어 보다 정밀한 ‘우주 오가노이드 모델’을 구축할 수 있는 과학적 기반을 제공합니다.
이러한 결과는 오가노이드 연구에 있어 미세 중력이 발달을 가속화하고 생리학적으로 더 정교한 모델 형성에 기여할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특히, 노화나 신경퇴행성 질환과 같이 장기간 진행되는 질환 모델 연구에서 시간 단축과 모델 정밀도 향상이라는 두 가지 이점을 동시에 제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이는 우주 생물학이 지구 의생명과학 발전에도 직접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근거로 평가됩니다.
우주 연구, 줄기세포의 새로운 특성을 발견하다
우주에서의 줄기세포 실험은 단순히 우주인의 건강을 위한 기술뿐만 아니, 줄기세포의 생물학적 특성을 보다 깊이 이해하는 데 중요한 과학적 성과들을 보여주었습니. 미세 중력이 골격계 줄기세포의 분화 경로를 변화시키고, 우주 방사선이 조혈모세포의 유전체 안정성에 미치는 영향을 통해 우리는 극한 환경에서 세포가 어떻게 반응하고 적응하는지를 구체적으로 관찰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연구 결과는 우주의 가혹함을 보여주는 동시에, 지구에서의 노화, 골다공증, 근감소증, 면역 질환 및 암과 같은 다양한 질환의 기전을 이해하고 치료법을 모색하는 데 귀중한 과학적 단서를 제공합니다.
특히 미세 중력이 만들어내는 중력 탈피 환경은 기존의 지구 기반 3차원 세포 배양의 한계를 극복하게 해주는 ‘자연 바이오리액터’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실제로 오가노이드 실험에서는 더 성숙하고 구조적으로 균일한 세포 조직이 형성되었고, 염증 반응과 세포 스트레스도 완화되는 경향을 보여주며, 질환 모델링과 약물 개발에 있어 새로운 기준점을 제시했습니다. 이는 지구 중력 하에서는 관찰하기 어려웠던 줄기세포의 본질적 반응을 정밀하게 분석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며, 향후 재생의학과 정밀의학 발전의 방향을 재정의할 가능성을 내포합니다.
결국, 우주에서의 줄기세포 연구는 단지 우주 공간이라는 특별한 실험 장소를 활용한 사례에 그치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주와 지구, 미래와 현재를 연결하며, 생명과학의 경계를 확장시키는 거대한 탐험입니다. 앞으로도 우리는 이 실험들을 통해 줄기세포의 잠재력을 더 깊이 이해하고, 인류가 더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는 과학적 기반을 다져갈 수 있을 것입니다.
참고 논문 및 자료:
1. Vissers, M. A., et al. (2019). A 3D bio-reactor for the culture of human mesenchymal stem cells in simulated microgravity. *Acta Astronautica*, 162, 532-540. (미세 중력 환경에서의 줄기세포 배양 연구)
2. Sharma, V. G. K. S., et al. (2017). Effects of Microgravity on Human Mesenchymal Stem Cell Differentiation. *Journal of Bone and Mineral Research*, 32(9), 1957-1967. (미세 중력이 줄기세포 분화에 미치는 영향 연구)
3. U.S. National Academies of Sciences, Engineering, and Medicine. (2020). *Space Biology and Medicine*. (우주 생물학 및 의학에 대한 공식 보고서)
4. NASA. (2023). *Stem Cell Research in Space*. (NASA 공식 웹사이트의 관련 연구 소개)
5. Cucinotta, F. A., & Durante, M. (2006). Cancer risk from exposure to galactic cosmic rays: Review of the evidence and future directions. *Journal of the National Cancer Institute*, 98(16), 1085-1090. (우주 방사선과 암 위험에 대한 연구)
6. Suman, S., et al. (2020). Space Radiation and Human Health: A Review. *Journal of Radiation and Applied Sciences*, 13(1), 1-13.
7. Vico, L., et al. (2014). Bone and microgravity. *Journal of Bone and Mineral Research*, 29(4), 856-8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