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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포를 키운다는 것: 배양의 기술



실험실에서의 육아

15년 가까이 줄기세포를 다루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이 있어요.

"줄기세포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뭔가요?" 대답은 의외로 단순해요.

"세포를 잘 키우는 것"이죠. ㅎㅎ

 

아무리 좋은 연구 아이디어가 있어도, 아무리 비싼 장비가 있어도, 세포가 건강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거든요.

세포 배양은 줄기세포 연구의 가장 기본이면서 동시에 가장 어려운 부분이라 할 수 있는데요.

실험실에서의 육아라고 표현해도 틀린 말이 아니죠.

그래서 주말에도 실험실에 가야 할 때가 종종 있는데요, 저는 이렇게 말하곤 해요. "세포들 밥 주러 가야 한다고요."

 

연구실 초년생 시절, 6개월이 지나도 도통 세포에 대한 감을 잡지 못했어요.

분명 매번 같은 방식으로 배양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보면 세포가 미분화 상태를 유지하지 못하고 이미 분화되어 있더라고요.

그 배치는 쓸 수 없으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죠.

주말 근무도 마다 않고 최선을 다했는데...

정말 세포를 어르고 달래서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키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어요.

그렇게 1년쯤 지나니 어느 순간 '아, 이제 좀 알겠다' 싶더라고요. 

세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예민하고, 배양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섬세한 기술이라는 걸요.


세포가 원하는 환경

줄기세포를 배양한다는 건 결국 우리 몸속 환경을 실험실에서 재현하는 거예요.

온도는 37℃, CO2 농도는 5%, 습도는 높게 유지하고, 무엇보다 무균 상태여야 하죠.

 

여기서 특히 중요한 것은 pH 관리예요.

CO2 농도와 배지의 완충 용액이 상호작용해서 pH 7.2-7.4를 유지하는데, 이게 조금만 어긋나도 세포는 스트레스를 받아요.

마치 우리가 미세먼지 농도에 민감한 것처럼, 세포도 자기 주변 환경 변화에 정말 민감하거든요.

 

무균 작업대에서 배양 작업을 할 때면 늘 긴장하게 돼요.

박테리아 하나, 곰팡이 포자 하나가 들어가면 며칠간 키운 세포가 한순간에 오염되니까요.

그래서 모든 기구를 멸균하고, 손소독을 몇 번이고 반복하고, 작업 중에는 숨도 조심스럽게 쉬죠.


평면에서 입체로

전통적인 2D 배양은 세포를 배양 접시 바닥에 한 층으로 펼쳐서 키우는 방식이에요.

관찰하기 쉽고 조작이 간편해서 지금도 가장 많이 쓰이죠.

하지만 문제가 있어요. 우리 몸속 세포는 평면에 살지 않거든요.

세포는 평면보다는 입체에서 진짜에 가깝게 자라요

 

그래서 등장한 게 3D 배양이에요.

세포들이 서로 뭉쳐서 구형 덩어리를 만드는 스페로이드(Spheroid),

그리고 한 단계 더 나아가 실제 장기의 구조와 기능까지 모사하는 오가노이드(Organoid)까지요.

처음 뇌 오가노이드를 만들었을 때의 감동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어요.

배양 접시 안에서 진짜 "미니 뇌"가 자라고 있었으니까요.

 

오가노이드는 지금 재생의료의 뜨거운 분야예요.

질병 모델링에도 쓰이고, 신약 개발에도 활용되고, 장기 이식 연구에도 적용되고 있죠.

2D에서 3D로의 전환은 줄기세포 연구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꿔놓았어요.


세포의 밥상

세포에게도 밥이 필요해요. 배지(culture media)가 바로 그거죠.

아미노산, 비타민, 무기염류, 포도당... 세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영양분이 들어있어요.

줄기세포: 세포를 살아있게 하는 기본 배양 방법들
세포를 키운다는 건, 환경을 만들고 주고 성장에 필요한 밥상을 차려주는 일과 비슷해요

 

예전에는 소 혈청(FBS)을 배지에 넣었어요.

혈청에 뭐가 들었는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어쨌든 세포가 잘 자라니까요. 그런데 이게 문제였죠.

배치마다 성분이 달라서 실험 재현성이 떨어지고, 윤리적 논란도 있었고, 무엇보다 임상에 쓸 수 없었거든요.

 

지금은 성분이 명확히 정의된 무혈청 배지를 써요.

여기에 성장인자(growth factor)를 정밀하게 조합해서 넣죠.

FGF2는 줄기세포의 만능성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이고, BDNF는 신경세포로의 분화를 유도해요.

성장인자들의 조합과 농도를 조절하면서, 우리는 세포를 원하는 방향으로 "설득"하는 거예요.

 

그리고 세포외기질(ECM)이 있어요.

세포의 침대이자 발판이죠. 젤라틴, 콜라겐, 라미닌, Matrigel...

어떤 ECM을 쓰느냐에 따라 세포의 행동이 달라져요.

 

특히 배아줄기세포나 역분화줄기세포는 Matrigel 없이는 만능성을 유지하기 어려웠는데,

최근에는 합성 대체재 개발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어요.


배양 기술이 가는 길

줄기세포 배양 기술은 지금도 계속 진화하고 있어요. 두 가지 큰 흐름이 보이죠.

첫째는 대량 배양과 자동화예요.

세포 치료제를 만들려면 엄청난 양의 세포가 필요한데, 이걸 사람 손으로 일일이 배양할 수는 없잖아요.

바이오리액터 같은 자동화 시스템 개발이 활발해요.

제가 처음 연구를 시작했을 때만 해도 모든 게 수작업이었는데, 지금은 로봇이 세포를 계대배양하는 시대가 됐죠.

 

둘째는 무혈청, 무이종성 배양이에요.

동물 유래 물질을 완전히 배제하고, 인체 유래 또는 합성 물질만으로 안전하고 균일한 줄기세포를 생산하는 거죠.

이게 가능해야 임상 등급(clinical grade) 세포를 만들 수 있고, 실제 환자에게 적용할 수 있어요.

미지의 요소를 최대한 줄이고, 예측 가능한 배양 시스템을 만드는 게 목표예요.

 

배양 기술은 줄기세포 연구의 가장 기본이지만, 동시에 가장 끊임없이 발전하는 분야예요.

이 기초가 튼튼해야 그 위에 유전자 편집이든, 질병 모델링이든, 세포 치료제 개발이든 쌓아 올릴 수 있으니까요.

건축에서 기초 공사가 중요한 것처럼요.


참고문헌

1. Clevers, H. (2016). "Modeling development and disease with organoids." Cell, 165(7), 1586-1597. DOI: 10.1016/j.cell.2016.05.082

2. Chen, G., et al. (2012). "Chemically defined conditions for human iPSC derivation and culture." Nature Methods, 9(4), 420-425. DOI: 10.1038/nmeth.1932

3. Wang, L., et al. (2016). "The application of hydrogels in stem cell research." Journal of Functional Biomaterials, 7(2), 17. DOI: 10.3390/jfb702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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