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반응형

 

15년 차 연구자가 들려주는 알기 쉬운 줄기세포 이야기

 

줄기세포와 유전자 가위, 운명적인 만남

만약 줄기세포를 이용해 질병의 근본적인 원인이 되는 유전자를 직접 고칠 수 있다면 어떨까요? 상상만 해도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이 상상을 현실로 만든 기술이 바로 유전자 가위(CRISPR, 크리스퍼)입니다. 2012년 제니퍼 다우드나(Jennifer Doudna)와 엠마뉴엘 샤르팡티에(Emmanuelle Charpentier) 박사가 CRISPR-Cas9 시스템의 원리를 밝혀내면서, 생명 공학 분야는 전에 없던 혁명을 맞이했습니다. 이 공로로 두 분은 2020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죠. 마치 컴퓨터 코드를 편집하듯, 우리 몸의 설계도인 유전자를 정교하게 자르고 붙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유전자 가위가 줄기세포와 만났을 때, 그 시너지는 상상 이상이 됩니다. 줄기세포의 무한 증식 능력과 다분화능, 그리고 유전자 가위의 정교한 유전자 편집 능력이 합쳐지면서, 우리는 이제 유전 질환의 근본적인 치료, 난치병 모델링의 혁신, 심지어는 맞춤형 세포 치료제 개발의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

유전자 가위(CRISPR-Cas9)란 무엇인가?

CRISPR-Cas9(크리스퍼-캐스9)은 2012년에 발표되어 생명 과학계를 뒤흔든 혁신적인 유전자 편집 기술입니다. '유전자 가위'라는 별명처럼 DNA 특정 부위를 정교하게 잘라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 마치 문서 편집기에서 오타를 수정하듯 유전자를 교정할 수 있게 해줍니다.

세균의 면역 시스템에서 시작된 기적

CRISPR은 사실 세균이 바이러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사용하는 면역 체계에서 유래했습니다. 세균은 침입한 바이러스의 DNA 조각을 자신의 유전체에 저장해 두었다가, 나중에 같은 바이러스가 다시 침입하면 이 '기억'을 이용해 바이러스 DNA를 정확하게 잘라 무력화시킵니다. 과학자들은 이 놀라운 메커니즘을 발견하고, 이를 인간을 포함한 다른 생물의 유전자를 편집하는 데 활용할 수 있음을 알아냈습니다. 2020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에마뉘엘 샤르팡티에(Emmanuelle Charpentier)와 제니퍼 다우드나(Jennifer Doudna)는 CRISPR-Cas9 시스템을 유전자 편집 도구로 개발한 공로를 인정받았습니다1.

CRISPR-Cas9, 어떻게 작동하는가?

CRISPR-Cas9 시스템은 크게 두 가지 핵심 구성 요소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 가이드 RNA (guide RNA, gRNA): 편집하고자 하는 DNA 염기 서열을 찾아가는 '내비게이션' 역할을 합니다. 약 20개의 염기로 이루어진 짧은 RNA 서열로, 특정 DNA 서열과 상보적으로 결합합니다.
  • Cas9 효소 (Cas9 enzyme): 가이드 RNA가 안내하는 곳으로 이동하여 DNA 이중 나선을 '자르는' 유전자 가위 역할을 하는 단백질입니다.

이 두 가지 구성 요소가 세포 안으로 들어가면, 가이드 RNA가 목표 DNA 서열을 찾아 결합하고, Cas9 효소는 해당 부위를 정확히 절단합니다. DNA가 절단되면 세포는 이를 복구하려 하는데, 이 과정에서 유전자를 제거하거나, 새로운 유전자를 삽입하거나, 기존의 유전자 서열을 교정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유전자 편집이 가능해집니다. 이 기술의 핵심은 그 정확성(specificity)간편성(simplicity)에 있습니다. 기존 유전자 편집 기술에 비해 훨씬 쉽고 빠르게 원하는 유전자를 조작할 수 있게 된 것이죠.

---

줄기세포 유전자 편집의 핵심: 왜 줄기세포인가?

유전자 가위 기술이 아무리 뛰어나도, 편집된 유전자가 질병 치료로 이어지려면 그 유전자를 담는 '그릇'이 중요합니다. 여기서 만능 줄기세포가 빛을 발합니다. 유전자 가위와 줄기세포의 결합은 단순한 기술의 조합을 넘어, 난치병 치료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합니다.

무한한 공급원

유전자를 편집한 줄기세포는 자기 재생 능력을 통해 무한정 증식할 수 있습니다. 한 번 정확하게 편집된 줄기세포를 대량으로 확보하여 다양한 연구나 치료에 활용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만능성의 이점: 다양한 세포로의 분화 가능성

인간 만능 줄기세포(hPSCs, iPSCs 포함)는 우리 몸을 구성하는 거의 모든 종류의 세포로 분화할 수 있는 만능성(pluripotency)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유전자 편집된 줄기세포를 원하는 특정 세포(예: 신경세포, 심근세포, 혈액세포 등)로 분화시켜 치료에 활용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특정 유전적 결함으로 인해 기능을 잃은 신경세포를 유전자 편집된 iPSCs로부터 분화시킨 건강한 신경세포로 대체하는 것을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질병 모델링: 환자 맞춤형 질병 연구 플랫폼

환자 유래 유도만능줄기세포(patient-specific iPSCs)에 유전자 가위 기술을 적용하는 것은 질병 연구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환자의 피부 세포나 혈액 세포를 이용하여 iPSCs를 만들고, 여기에 유전자 가위를 사용해 질병의 원인이 되는 유전자 변이를 '교정'하거나, 반대로 건강한 사람의 iPSCs에 질병 관련 유전자 변이를 '도입'하여 질병 모델을 만들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질병 특이적 세포 모델은 실제 환자의 질병 진행 과정을 시험관에서 재현할 수 있게 해주며, 새로운 약물 후보 물질의 효능과 부작용을 평가하는 데 이상적인 플랫폼이 됩니다. 이는 특히 유전적 요인이 큰 신경퇴행성 질환이나 심장 질환 연구에서 강력한 도구로 활용됩니다8.

세포 치료제로의 가능성: 유전병 치료의 새 지평

유전자 편집된 줄기세포는 손상된 조직이나 장기를 대체하는 세포 치료제로서 막대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유전병 환자의 줄기세포에서 질병 유전자를 교정하고, 이를 다시 환자에게 이식하여 병의 근본 원인을 치료하는 방식입니다. 이는 기존의 증상 완화 치료를 넘어, 완치를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겸상 적혈구 빈혈증(Sickle Cell Disease)이나 베타 지중해빈혈(β-Thalassemia)과 같은 혈액 질환은 유전자 편집된 조혈모세포를 이용한 임상 시험에서 긍정적인 결과들이 보고되고 있습니다9,10.

---

유전자 가위-줄기세포 융합 기술의 놀라운 활용

유전자 가위와 줄기세포 기술의 시너지는 이미 다양한 질병 연구와 치료 분야에서 구체적인 성과를 내고 있습니다.

유전자 가위(CRISPR)와 줄기세포의 만남: 질병의 원인을 직접 고치다

겸상 적혈구 빈혈증: 첫 번째 임상 성공 사례

겸상 적혈구 빈혈증은 헤모글로빈 유전자의 돌연변이로 인해 적혈구가 낫 모양으로 변형되어 발생하는 유전성 혈액 질환입니다. CRISPR-Cas9 기술은 이 질병의 치료에 획기적인 가능성을 제시했습니다. 환자 자신의 조혈모세포를 채취하여 체외에서 CRISPR로 유전자 편집(돌연변이 교정 또는 감마-글로빈 생산 촉진)한 후, 다시 환자에게 주입하는 방식으로 임상 시험이 진행되었으며, 실제로 상당수의 환자에서 증상이 개선되고 수혈 필요성이 줄어드는 등 놀라운 결과가 보고되었습니다. 이는 유전자 편집 기반 세포 치료제의 첫 상용화 사례로 기록될 만큼 중요한 이정표가 되었습니다9.

신경퇴행성 질환 연구: 알츠하이머병과 파킨슨병

알츠하이머병, 파킨슨병, 헌팅턴병과 같은 신경퇴행성 질환은 복잡한 발병 기전과 현재로서는 완치법이 없는 난치병입니다. 유전자 가위와 줄기세포의 결합은 이러한 질병 연구에 새로운 돌파구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환자 유래 iPSCs를 신경세포로 분화시킨 후, 유전자 가위를 이용해 질병 관련 유전자를 편집하거나 변이를 도입하여 질병 모델을 구축합니다. 이 모델을 통해 질병의 진행 과정을 연구하고, 새로운 치료 약물이나 유전자 치료 전략을 시험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헌팅턴병 모델에서 질병 유전자의 발현을 CRISPR로 억제하여 신경세포의 손상을 줄이는 연구가 진행 중입니다11.

암 면역 치료: CAR-T 세포의 강화

최근 각광받는 암 치료법인 CAR-T(Chimeric Antigen Receptor T-cell) 세포 치료법은 환자의 T 세포를 유전적으로 조작하여 암세포를 효과적으로 공격하게 만드는 기술입니다. 여기에 CRISPR 유전자 가위 기술이 더해지면, CAR-T 세포의 기능을 더욱 향상시키거나, 부작용을 줄이는 데 활용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T 세포의 특정 유전자를 제거하여 면역 회피를 줄이거나, 다른 환자에게도 적용 가능한 '범용' CAR-T 세포를 개발하는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습니다12.

---

남겨진 과제와 윤리적 고려

유전자 가위-줄기세포 융합 기술은 엄청난 잠재력을 가지고 있지만,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와 중요한 윤리적 고려 사항들이 존재합니다.

Off-target 효과와 전달 효율성

CRISPR은 매우 정교하지만, 때로는 목표하지 않은 다른 DNA 부위(off-target)를 자르는 Off-target 효과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는 원치 않는 유전자 변이를 초래하여 세포 기능에 악영향을 미치거나 암을 유발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러한 off-target 효과를 최소화하고 정확도를 높이는 연구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또한, 유전자 가위 시스템을 세포 내로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전달하는 전달 기술(delivery methods) 역시 중요한 과제입니다. 현재는 바이러스 벡터나 전기 천공(electroporation) 등이 사용되지만, 더욱 안전하고 효율적인 전달 시스템 개발이 필요합니다.

인간 배아 편집의 윤리적 논쟁

유전자 가위 기술을 인간 배아나 생식세포에 적용하여 후대에 유전될 수 있는 유전자 변이를 교정하는 것, 즉 유전 가능 유전자 편집(heritable gene editing)은 가장 뜨거운 윤리적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유전성 질환을 근본적으로 제거할 수 있다는 긍정적 측면이 있지만, '맞춤형 아기' 논란이나 예상치 못한 장기적인 결과, 그리고 사회적 불평등 심화 등 복잡한 윤리적, 사회적 문제들을 야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임상적 목적으로 인간 배아의 유전 가능 편집을 금지하거나 엄격히 규제하고 있습니다. 연구자들은 치료 목적의 체세포 유전자 편집과 구별하여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으며, 국제적인 논의와 합의를 통해 합리적인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려는 노력이 계속되고 있습니다13.

---

유전자 가위와 줄기세포, 미래 의학의 청사진

유전자 가위와 줄기세포 기술의 만남은 질병 치료의 패러다임을 혁신적으로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단순히 증상을 완화하는 것을 넘어, 질병의 근본 원인을 직접 교정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준 것이죠. 환자 맞춤형 질병 모델링을 통해 신약 개발 과정을 가속화하고, 유전병 환자에게 새로운 희망을 선사하며, 나아가 암과 같은 난치병 극복에도 기여할 잠재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아직 넘어야 할 산들이 많습니다. 기술적 한계를 극복하고 안전성과 효율성을 더욱 높이는 것은 물론, 복잡한 윤리적, 사회적 문제에 대한 지속적인 논의와 사회적 합의가 필수적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두 가지 강력한 기술의 융합이 인류의 건강과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 기여할 것이라는 점입니다. 저는 이 분야에 대한 연구가 계속될수록 더욱 놀라운 발견과 성과들이 이어질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다음 시간에는 '줄기세포와 신약 개발: 약물 스크리닝의 혁명'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기대해주세요!

참고 논문:

1. Jinek, M., Chylinski, K., Fonfara, I., Hauer, A., Doudna, J. A., & Charpentier, E. (2012). A programmable dual RNA-guided DNA endonuclease in adaptive bacterial immunity. *Science*, 337(6096), 816-821.

2. Doudna, J. A., & Charpentier, E. (2014). The new frontier of genome engineering with CRISPR-Cas9. *Science*, 346(6213), 1258096.

3. Cong, L., et al. (2013). Multiplex Genome Engineering Using CRISPR/Cas Systems. *Science*, 339(6121), 819-823.

4. Mali, P., et al. (2013). RNA-guided human genome engineering via Cas9. *Science*, 339(6121), 823-826.

5. Takahashi, K., & Yamanaka, S. (2006). Induction of pluripotent stem cells from mouse embryonic and adult fibroblast cultures by defined factors. *Cell*, 126(4), 663-676.

6. Yu, J., et al. (2007). Induced pluripotent stem cell lines derived from human somatic cells. *Science*, 318(5858), 1917-1920.

7. Cyranoski, D. (2018). CRISPR gene-edited babies: What happened next. *Nature*, 563(7733), 607-608. (윤리적 논란 관련)

8. Bellin, M., et al. (2012). Induced pluripotent stem cells as a tool for disease modeling. *The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 366(12), 1144-1146.

9. Frangoul, H., et al. (2021). CRISPR-Cas9 Gene Editing for Sickle Cell Disease and β-Thalassemia.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 384(3), 252-260.

10. Locatelli, F., et al. (2022). Autologous exagamglogene autotemcel for transfusion-dependent β-thalassemia and sickle cell disease. *Nature Medicine*, 28(5), 909-918.

11. Monteys, A. M., et al. (2017). CRISPR-Cas9-mediated gene editing in Huntington’s disease iPSCs. *Cell Stem Cell*, 21(5), 651-663.e7.

12. Stadtmauer, E. A., et al. (2020). CRISPR-engineered T cells in patients with refractory cancer. *Science*, 367(6481), eaba7365.

13. National Academies of Sciences, Engineering, and Medicine. (2017). *Human Genome Editing: Science, Ethics, and Governance*. The National Academies Press.

반응형
반응형